숫자에 홀려서 이직했고, 숫자로 설명 안 되는 것들 때문에 무너졌다. 그 1년의 기록.
이직 제안을 받았을 때 숫자는 명확했다. 연봉 600만 원 인상. 현 연봉의 약 12% 오르는 조건이었다. 머릿속으로 금방 계산이 됐다. 월 50만 원. 1년이면 600. 갈 이유가 충분했다.
그 회사에서 11개월 만에 퇴사했다. 통장 잔고는 늘었다. 그런데 그해 말 건강검진에서 처음으로 "수면 장애" 소견이 나왔고, 퇴사하고 나서 두 달 동안 코드를 한 줄도 못 짰다. 번아웃이었다.
이 글은 그 11개월의 솔직한 기록이다. "복지가 중요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직접 겪고 나서야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연봉 인상액
(예상 2년)
번아웃 회복 기간
자발적 연봉 삭감액
두 회사, 숫자로만 보면 선택이 쉬웠다
이직 당시 나는 전 직장인 B사에서 만 2년을 다니고 있었다. 처음 제안이 들어온 A사의 조건은 단순하고 강렬했다. 연봉 5,800만 원. B사 대비 600 상승. 직급도 한 단계 올라가는 조건이었다.
근처 식당 평균 1만2천 원
사내 스터디도 업무 외 시간
택시비 지원 있음 (위안)
치과·안과 없음
"개발자는 출근이 기본"
+ 저녁도 제공
도서, 강의, 컨퍼런스 포함
초과 시 대체 휴가 적용
본인 포함 가족까지
코어타임 외 자율 출퇴근
이직 전에 이 비교표를 만들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당시 나는 연봉 숫자만 봤다. 복지 항목들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개발자는 코드 짜는 실력으로 평가받는다고 믿었고, 밥이나 재택 같은 건 부수적인 것이라 여겼다.
"월 50만 원 더 받는 대신, 나는 매일 저녁 1~2시간을 야근으로 팔았다. 시급 계산을 했더라면 이직 안 했을 것이다."
— 퇴사 후 쓴 메모에서실질 연봉을 계산해봤더니
퇴사 후 11개월치 지출을 정리하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비교를 해봤다. 연봉 600 차이가 실제로 내 통장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월 50만 원을 더 받으러 갔는데, 지출이 월 58만 원 더 나갔다. 숫자로만 보면 오히려 손해였다. 물론 세전 연봉 차이가 있으니 실수령 기준으론 완전 손해는 아니지만, "연봉 600 올랐으니 여유롭겠지"라는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식대 지원 여부 (월 10~26만 원 차이), 교육비 지원 (연 50~300만 원), 재택 가능 여부 (교통비 + 시간 환산), 야근 문화 (식비·체력·여가 소비), 건강검진 범위 (치과·안과 자부담 시 연 20~50만 원), 경조사 지원·안식월 여부
무너지는 건 천천히 온다
복지 항목별 중요도 — 1년 후 내 평가
이직 전엔 복지를 "있으면 좋은 것"으로 봤다. 지금은 "없으면 연봉에서 빼야 하는 것"으로 본다. 항목별로 내가 느낀 실질 영향도를 정리해봤다.
| 복지 항목 | 중요도 | 실질 영향 | 경험 평가 |
|---|---|---|---|
| 야근 문화 / 일하는 방식 | 체력·멘탈·성장 시간 전부 | 최우선 | |
| 재택근무 / 유연근무 | 집중력·출퇴근 피로·시간 자율성 | 최우선 | |
| 교육비·컨퍼런스 지원 | 성장 속도와 동기부여 | 매우 중요 | |
| 식대 / 구내식당 | 월 10~26만 원 실질 차이 | 중요 | |
| 건강검진 범위 | 장기 재직 시 체감 큼 | 중요 | |
| 안식월 / 리프레시 휴가 | 3년 이상 재직 시 결정적 | 중요 | |
| 경조사 지원 / 명절 선물 | 금전적 영향 작음 | 부수적 | |
| 사내 동아리 / 문화 행사 | 개인 차이가 큼 | 부수적 |
가장 중요한 건 의외로 화려한 복지가 아니었다. 야근 문화와 일하는 방식. 이건 복지 항목이라기보다 회사의 철학이다. 이 부분이 잘못돼 있으면 다른 복지가 아무리 좋아도 체감이 안 된다. A사도 야근 택시비 지원이 있었다. 그게 야근을 정당화하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다음 이직 때 내가 실제로 물어본 것들
추상적인 "야근 거의 없어요"보다 구체적인 수치를 물어야 한다. "9시? 10시?" 하고 범위를 좁혀야 실제 답을 들을 수 있다.
지원 제도가 있어도 "바빠서 못 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사용 사례를 물어보면 문화가 보인다.
"재택 가능"과 "재택을 눈치 없이 쓸 수 있음"은 다르다. 팀장 본인이 재택을 쓰는지 물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바로 투입인지, 여유 있게 적응하는지 문화가 드러난다. 급하게 돌아가는 팀인지 알 수 있다.
연봉 네고 전에 복지 전체를 파악해야 진짜 조건을 비교할 수 있다. 연봉부터 받아놓고 복지 물어보면 협상력이 줄어든다.
결국 내가 배운 것
번아웃 회복 기간 동안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내가 왜 그 계산을 안 했을까"였다. 연봉 600이 실질적으로 내 삶을 어떻게 바꿀지 계산하지 않았다. 대신 숫자 자체에 반응했다.
① 일하는 방식 먼저 — 야근 빈도, 재택, 자율성. 이게 안 맞으면 다른 건 의미 없다
② 성장 환경 다음 — 교육비, 코드 리뷰 문화, 팀 수준. 여기서 격차가 3년 후 실력 차이를 만든다
③ 연봉은 마지막으로 — 위 두 조건이 맞는 곳 중에서 가장 높은 곳. 순서가 이래야 후회가 없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전 직장 A사보다 연봉이 400 낮다. 근데 퇴근 후 공부를 다시 하고 있고, 사이드 프로젝트도 운영 중이다. 자기 전에 스트레스로 잠 못 자는 날이 없다. 그 400이 나한테 가져다준 게 연봉 A사가 뺏어간 것보다 크다. 숫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렇다.
💬 연봉과 복지, 어떻게 균형 잡으셨나요?
이직할 때 연봉과 복지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셨나요? 혹은 높은 연봉을 선택했다가 후회한 경험, 반대로 낮은 연봉인데 만족하는 경험이 있다면 댓글로 들려주세요. 개발자마다 상황이 다르니, 다양한 이야기가 모이면 더 입체적인 기준이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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