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터널링은 입자가 고전역학적으로는 넘을 수 없는 에너지 장벽을 확률적으로 통과하는 양자역학적 현상입니다. 파동함수가 장벽 내부로 침투하여 반대편에 유한한 확률로 나타날 수 있으며, 이것은 태양의 핵융합, 반도체 소자, 방사성 붕괴, 주사 터널링 현미경 등 자연과 기술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입니다. 오늘은 양자 터널링,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묘한 현상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양자 터널링, 고전 물리학이 금지한 것을 양자역학이 허용하다
고전역학에서 공이 언덕을 넘으려면 정상까지 도달할 충분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에너지가 부족하면 중간에 멈춰 되돌아옵니다. 절대로 언덕을 뚫고 반대편으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다릅니다. 입자의 위치는 확률로만 기술되며 파동함수로 표현됩니다. 입자가 에너지 장벽을 만나면 파동함수가 장벽 내부로 지수적으로 감쇠하며 침투합니다. 장벽이 충분히 얇으면 파동함수가 반대편까지 도달하여 입자가 그곳에서 발견될 확률이 0이 아닙니다. 이것이 터널링입니다. 마치 산을 넘는 대신 터널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1928년 조지 가모프는 알파 붕괴를 터널링으로 설명했습니다. 알파 입자는 원자핵 내부에 갇혀 있지만 핵력과 전기력이 만드는 퍼텐셜 장벽보다 에너지가 낮습니다. 고전적으로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하지만 터널링으로 확률적으로 탈출합니다. 가모프의 계산은 실험적으로 측정된 반감기와 놀랍도록 일치했습니다. 터널링 확률은 장벽의 높이와 폭에 극도로 민감합니다. 조금만 높거나 두꺼워져도 확률이 급격히 감소합니다. 이것이 어떤 원소는 순식간에 붕괴하고 어떤 원소는 수십억 년 동안 안정한 이유입니다. 터널링은 직관에 반하지만 실험적으로 확인되고 일상적으로 관측됩니다.
태양이 빛나고 반도체가 작동하는 비밀
핵융합을 가능하게 하는 터널링
태양 중심부의 온도는 약 1500만도입니다. 엄청나게 뜨겁지만 고전적으로는 핵융합이 일어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두 양성자가 융합하려면 강한 전기적 척력을 이겨내고 가까워져야 합니다. 이 쿨롱 장벽을 넘으려면 수억 도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낮은 온도에서 융합이 일어납니다. 비밀은 터널링입니다. 양성자들이 충돌할 때 평균 에너지로는 장벽을 넘지 못하지만 파동함수가 장벽을 뚫고 들어가 핵력이 작용하는 거리까지 도달할 확률이 있습니다. 일단 그 거리에 이르면 강한 핵력이 양성자들을 붙잡아 융합시킵니다. 터널링 확률은 매우 낮지만 태양에는 엄청난 수의 양성자가 있고 계속 충돌하므로 충분한 융합 반응이 일어납니다. 초당 약 6억 톤의 수소가 헬륨으로 변환됩니다. 터널링이 없었다면 태양은 빛나지 못했고 지구에 생명도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별의 에너지원이 터널링에 의존합니다. 저온 핵융합 연구도 터널링을 이용하려는 시도입니다. 고온 플라즈마 없이 더 낮은 온도에서 융합을 일으킬 수 있다면 에너지 생산이 훨씬 쉬워집니다. 뮤온 촉매 핵융합은 뮤온이 전자를 대체하여 원자 크기를 줄여 터널링 확률을 높입니다. 아직 상용화는 멀지만 원리적으로 가능합니다.
터널 다이오드와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소자도 터널링을 이용합니다. 터널 다이오드는 1957년 에사키 레오나가 발명했습니다. 매우 얇은 공핍 영역을 만들어 전자가 터널링으로 통과하게 합니다. 특이하게도 전압이 증가해도 전류가 감소하는 음의 저항 영역이 있습니다. 이것을 이용하여 초고속 스위칭과 발진 회로를 만듭니다. 마이크로파 발진기와 증폭기에 사용되며 에사키는 1973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플래시 메모리는 현대 전자기기의 핵심입니다. USB, SSD, 스마트폰 저장장치가 모두 플래시 메모리입니다. 작동 원리는 터널링입니다. 얇은 산화막으로 둘러싸인 플로팅 게이트에 전자를 가둡니다. 높은 전압을 가하면 전자가 터널링으로 산화막을 통과하여 플로팅 게이트에 저장됩니다. 이것이 1 상태입니다. 전자가 없으면 0 상태입니다. 산화막이 매우 얇아서(수 나노미터) 터널링이 가능하지만 전압이 없으면 전자가 빠져나갈 확률이 극히 낮아 수년간 데이터를 유지합니다. 터널링 없이는 현대 정보화 사회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양자점 레이저도 터널링을 이용합니다. 전자가 양자점으로 터널링하여 들어가 빛을 방출합니다. 공명 터널링 다이오드는 특정 에너지에서 터널링 확률이 급격히 증가하는 공명 현상을 이용합니다.
주사 터널링 현미경으로 보는 원자
1981년 기르드 비니히와 하인리히 로러는 주사 터널링 현미경(STM)을 발명했습니다. 이것은 원자를 직접 볼 수 있는 최초의 도구였습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극도로 뾰족한 금속 탐침을 표면에 가까이 가져갑니다. 거리가 나노미터 이하가 되면 전자가 진공을 가로질러 탐침과 표면 사이를 터널링합니다. 전압을 가하면 터널 전류가 흐릅니다. 이 전류는 거리에 극도로 민감합니다. 1옹스트롬(원자 크기의 10분의 1) 거리 변화로 전류가 10배 변합니다. 탐침을 표면 위로 스캔하며 일정한 전류를 유지하도록 높이를 조절합니다. 높이 변화를 기록하면 표면의 원자 배열을 영상화할 수 있습니다. 실리콘 표면의 개별 원자, DNA 분자의 나선 구조, 그래핀의 육각형 격자를 실제로 볼 수 있습니다. STM은 나노기술 혁명을 촉발했습니다. 1990년 IBM 연구원들은 STM으로 제논 원자 35개를 하나씩 옮겨 IBM 로고를 만들었습니다. 원자 조작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비니히와 로러는 1986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원자력 현미경(AFM)도 비슷한 원리지만 터널링 대신 힘을 측정합니다. 생물학적 샘플처럼 전도성이 없는 물질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터널링이 열어가는 양자 기술의 미래
터널링은 양자 컴퓨터에도 중요합니다. 초전도 큐비트는 조세프슨 접합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쿠퍼 쌍이 절연체를 터널링으로 통과하는 현상입니다. 양자 어닐링은 터널링으로 에너지 장벽을 넘어 최적 해를 찾습니다. 고전 컴퓨터는 국소 최소값에 갇히지만 양자 어닐링은 터널링으로 탈출하여 전역 최소값을 찾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D-Wave 같은 양자 어닐러가 최적화 문제에 사용됩니다. 터널링은 양자 암호에도 영향을 줍니다. 양자 키 분배는 도청을 감지할 수 있다고 하지만 터널링으로 정보가 새어나갈 가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분자 전자공학에서는 분자 하나를 전선으로 사용합니다. 전자가 분자를 따라 터널링하며 이동합니다. 단일 분자 트랜지스터가 가능해지면 무어의 법칙이 계속될 수 있습니다. 효소 반응도 터널링이 관여합니다. 수소 원자나 양성자가 에너지 장벽을 터널링으로 넘어 화학 반응 속도를 높입니다. 광합성에서 전자 전달도 터널링으로 일어납니다. 생명 현상의 근본에 양자 효과가 있다는 양자 생물학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터널링의 역설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하틀만 효과는 터널링 시간이 장벽 두께와 무관하게 일정하다는 현상입니다. 터널링 속도가 광속을 초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보는 전달되지 않아 상대성이론을 위반하지 않습니다. 양자 제논 효과는 관측이 터널링을 억제하는 현상입니다. 계속 관측하면 입자가 터널링하지 못하고 갇혀 있습니다. 터널링은 고전 세계와 양자 세계의 근본적 차이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현상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가능해지는 양자 마법이며, 미시 세계의 규칙이 거시 세계와 얼마나 다른지 일깨워줍니다. 터널링 덕분에 태양이 빛나고, 우리가 존재하며, 현대 기술이 작동합니다.